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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배우

장국영 : 찬란했던 아시아의 별

by 블로잉 더스트 2025.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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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캐릭터에는 나의 일부가 있어요. 그리고 모든 캐릭터는 내 안에 영원히 살아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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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 Kong Film Archive 인터뷰, 1993년

 

홍콩배우 중 가장 많이 내한했을 정도로 한국을 좋아했던 장국영

 

1956년 9월 12일 홍콩에서 태어난 장국영은 '아시아의 슈퍼스타'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은 전설적인 배우다. 18세의 나이로 TVB 연기학교에 입학한 그는 이미 당시부터 특별한 존재감으로 주목받았다. TVB 3기생으로 입학한 그는 같은 기수였던 양가휘, 유덕화와 함께 'TVB 삼대천왕'으로 불리며 스타성을 인정받았다.

 

1977년 TVB 드라마 '재호방'으로 데뷔한 장국영은 1984년 첫 앨범 '첫 번째 날(第一天)' (1984) 을 발매하며 가수로서도 성공가도를 달렸다. 그의 히트곡 'Monica'는 아시아 전역에서 사랑받았고,이후 발표한 'Chase'와 'Who Doesn't Love Me'도 큰 성공을 거뒀다. 무엇보다, 영웅본색의 주제가인 당년정(그해의 정)을 직접 불렀는데 50대 이상의 형님들은 뜻은 모르지만 광동어로 다들 부를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배우로서 장국영의 진가는 1986년 '영웅본색'을 통해 폭발적으로 드러났다. 이 작품에서 송자걸 역할로 출연한 그는 주윤발, 양조위와 함께 홍콩 누아르의 새 역사를 썼고, 이후 '패왕별희'에서 보여준 경극 배우 역할은 할리우드까지 그의 명성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왕가위 감독과의 만남은 그의 연기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아비정전'(1990), '동사서독'(1994), '해피투게더'(1997) 등에서 보여준 그의 연기는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해피투게더'에서 동성애자 역할을 연기하며 보여준 과감성과 섬세함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장국영과 왕가위

 

 


대표작으로 보는 장국영의 연기 인생

 

아비정전 (Days of Being Wild, 1990)

 

1960년대 홍콩, 포르투갈령 마카오, 그리고 필리핀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청춘의 방황과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양아들로 자란 아비(장국영)는 자신의 진짜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인물이다. 그는 매표소에서 일하는 소려진(장만옥)에게 "1분 동안 너를 보고 있었다"며 접근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아비는 갑자기 그녀를 떠나 댄서 루루(유락연)와 새로운 관계를 시작한다. 양어머니에게서 자신이 필리핀 출신 매춘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의 방황은 더욱 깊어진다.

 

장국영은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진정한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아비라는 복잡한 캐릭터를 섬세하게 표현해낸다. 특히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향한 분노와 그리움,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청년의 모습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영화는 아비의 시선을 통해 1960년대 홍콩의 청년들이 겪었던 실존적 고민과 식민지 시대의 정체성 문제를 함께 다룬다.

 

 

너무나 유명한 장면인 맘보춤 장면은 둘째치더라도, 자신을 낳아준 필리핀 친어머니를 만나러 갔지만 복수심에 끝까지 얼굴을 보여주지않고 주먹을 쥐고 등을 돌린 채 저벅저벅 걸어가는 장면만으로도 이 영화를 봐야하는 이유가 된다. 

 

이 영화는 원래 2부작으로 기획되었는데, 양조위가 출연하는 마지막 장면은 2부를 위한 복선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2부는 결국 제작되지 않았고, 왕가위 감독은 이후 '화양연화'의 모티브로 활용했다고 한다.

 

"난 새처럼 자유롭게 날고 싶었어. 하지만 결국 날개는 접었지." - 아비(장국영)

"시간은 되돌릴 수 없어. 그래서 더 아름다운 거야." - 아비(장국영)

 

 

[이 작품에 함께 출연한 배우]

 

장만옥 : 모두가 매료됐던 그 시절의 장만옥.

"왕가위 감독의 영화에는 대사가 많지 않아요. 하지만 그게 더 어려워요. 말하지 않고도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하니까요."-[2000년 화양연화 개봉 당시 Time Asia 인터뷰] 홍콩 영화 황금기를 대표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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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별희 (Farewell My Concubine, 1993)

1924년부터 1977년까지 중국 현대사의 격동기를 배경으로, 경극 배우 두 사람의 운명적인 삶을 그린 대서사시다. 어린 시절 매춘부였던 어머니에 의해 경극 학교에 팔려온 두지(장국영)는 그곳에서 시투(장풍의)를 만난다. 혹독한 훈련을 거쳐 두 사람은 '패왕별희'의 주연 배우가 되고, 두지는 우희 역할로, 시투는 항우 역할로 명성을 얻는다.

 

 

하지만 시투가 명문가의 딸 주샨(공리)과 결혼하면서 세 사람의 관계는 복잡해진다. 이후 중일전쟁, 국공내전, 문화대혁명 등 격변하는 시대를 거치며 그들의 우정과 사랑, 예술에 대한 신념은 시련을 맞는다. 장국영은 평생 시투를 향한 짝사랑과 경극에 대한 집착을 가진 두지를 연기하며, 성 정체성의 혼란과 예술가로서의 고뇌를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장국영의 미친 미모 ❘ 출처 : 네이버 영화 포토

 

특히, 문화대혁명 시기 두지가 시투를 배신하고 그를 비판하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희의 분장을 하고 자결하는 장면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평가받는다. 장국영은 이 역할을 위해 실제로 9개월간 경극을 배웠으며, 전문 경극 배우들도 놀랄 만큼 완벽한 동작과 창법을 선보였다.

분장 장면들은 실제 전통 경극 분장 과정을 그대로 재현했으며, 한 번 분장하는 데 4시간이 넘게 걸렸다고 하며, 영화는 중국에서 처음 개봉될 때 상당 부분이 검열되었으나, 이후 완전판이 공개되었다.

 

 

"나는 평생 '패왕별희'만을 연기했다. 우리는 평생 함께할 운명이야." - 두지(장국영)

"무대 위에서는 진짜보다 더 진짜같아야 해." - 두지(장국영)

 


해피투게더 (Happy Together, 1997)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배경으로 두 남성의 애증 관계를 그린 작품이다. 홍콩에서 온 게이 커플 아휘(양조위)와 보영(장국영)은 이과수 폭포를 보기 위해 아르헨티나로 떠난다. 하지만 그들은 끝내 폭포에 도착하지 못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머물게 된다.

 

불안정한 관계 속에서 보영은 끊임없이 아휘에게 집착하고 배신하기를 반복한다. 탱고 바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보영은 자신의 욕망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인다. 장국영은 사랑하는 사람을 독점하고 싶은 욕망과 자유로워지고 싶은 갈망 사이에서 고뇌하는 캐릭터를 극한의 감정연기로 표현해낸다.

 

영화는 흑백과 컬러를 오가는 실험적인 촬영, 현기증 날 듯한 카메라 워크, 그리고 탱고 음악과 함께 어우러진 두 배우의 섬세한 연기를 통해 사랑의 본질을 탐구한다. 특히 장국영이 보여주는 광기 어린 집착과 슬픔은 그의 연기 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모습으로 평가받는다.

 

영화는 실제 부에노스아이레스 현지에서 3개월간 촬영되었으며, 배우들은 현지 생활에 완전히 몰입했다.왕가위 감독은 "이 영화는 장국영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다"고도 했고, "양조위가 음이라면 장국영은 양이다, 처음에는 양지에 존재하는 장국영이 눈에 띄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양조위에게 눈이 갈 것이다"라고도 말했다. 

 

 

"다시 시작하자는 말이 제일 아프다. 끝났다는 걸 인정하는 거니까." - 보영(장국영)

"너와 함께라면 지구 끝까지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았어." - 보영(장국영)

 

[이 작품에 함께 출연한 배우]

 

양조위 : 홍콩 영화에는 양조위라는 장르가 있다.

"나는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촬영이 없을 때도 캐릭터의 습관과 생각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메소드 연기다."-양조위 | Variety Asia,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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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서독 (Ashes of Time, 1994)

무협 소설의 대가 김용의 '사조영웅전'를 재해석한 이 작품에서 장국영은 용문객잔을 운영하는 구양봉역을 맡았다.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객잔에서 그는 킬러 중개인 역할을 하며, 각각의 사연을 가진 무사들과 얽히게 된다.

 

 구양봉은 사람 목숨을 주판으로 계산하는 냉정한 인물임과 동시에 한때 자신의 형수가 된 사람(장만옥)을 사랑했지만 그 사랑에 실패하고 도망친 황량한 사막에 갇힌 인물로,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사막으로 들어와 객점을 운영하며 살아간다. 장국영은 내면의 깊은 상처와 후회를 간직한 채 냉소적으로 살아가는 구양봉을 절제된 감정 연기로 표현해낸다. 구양봉은 훗날 서독이라는 이름으로 무림에 명성을 떨치기 전의 이름이며, 동사서독은 구양봉이 서독이 되기 전의 프리퀄 스토리이다.

 

영화는 전통 무협 장르의 문법을 완전히 해체하고 재구성했다. 빠른 칼싸움 대신 등장인물들의 내적 갈등과 상실, 그리움을 시적인 영상미로 담아낸다. 특히 장국영이 보여주는 구양봉의 고독과 체념은 무협 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실존적 고뇌를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실 이 때문에 상당히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는데, 장르는 무협이지만 실제 무술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고 주인공의 독백이나 늘어지는 스토리 전개로 인해 보다가 졸았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반면, 왕가위 특유의 카메라 기법이나 미장센, 당대 최고의 배우들의 내면 연기로 왕가위의 최고작으로 꼽는 사람들도 있다.

 

촬영은 2년이 넘게 진행되었으며, 사막에서의 극한 촬영으로 제작진 모두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하긴 당대 최고의 배우들을 모아다가 왕가위 특유의 무계획성으로 하루종일 사막 모래바람만 뒤집어 쓰게 했으니, 배우는 물론이고 제작자 입장에서도 피가 말랐을 법하다. 그래서 제작진은 놀고있는 주연들과 스탭들을 돌려 동성서취(제작 : 왕가위)라는 허접한 코메디 영화를 만들었는데 날림으로 만든 동성서취가 동사서독보다 더 흥행했다고 한다.

 

촬영 대기중이던 당대 최고의 배우들을 그대로 모아만든 혼란한 코메디 영화 [동성서취] ❘ 뒤에 왕조현과 장만옥이 보인다.

 

 

"사랑하는 사람을 잊고 싶다면 매일 조금씩 잊어가면 돼. 하지만 난 그럴 수 없었어." - 구양봉(장국영)

"모든 것은 한 순간의 선택에서 시작된다." - 구양봉(장국영)

 

[이 작품에 함께 출연한 배우]

 

장만옥 : 모두가 매료됐던 그 시절의 장만옥.

"왕가위 감독의 영화에는 대사가 많지 않아요. 하지만 그게 더 어려워요. 말하지 않고도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하니까요."-[2000년 화양연화 개봉 당시 Time Asia 인터뷰] 홍콩 영화 황금기를 대표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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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위 : 홍콩 영화에는 양조위라는 장르가 있다.

"나는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촬영이 없을 때도 캐릭터의 습관과 생각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메소드 연기다."-양조위 | Variety Asia,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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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떠난 후, 영원한 빛이 되다

 

2003년 4월 1일 오후 4시 30분경, 홍콩 센트럴의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장국영은 생을 마감했다. South China Morning Post의 보도에 따르면, 그는 호텔 26층에서 투신하기 전 리셉션에 "I want to be an artist who is responsible" (나는 책임감 있는 예술가가 되고 싶다)라는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고 하는데, 확인된 사살은 아니라고 전해진다. 

 

장국영의 마지막 며칠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3월 30일 그는 마지막 영화 '2046' 촬영을 위해 왕가위 감독과 미팅을 가졌고  3월 31일에는 오랜 파트너 당지예와 저녁 식사를 했다. Ming Pao Daily의 보도에 따르면, 당지예에게 보낸 마지막 메시지는 "對不起" (미안해)였다고 한다.

 

동료들은 하나같이 그의 죽음을 아쉬워했다.

"장국영은 완벽주의자였어요. 그는 자신에게 너무 가혹했죠." - 양조위 (Apple Daily, 2003)

"그는 항상 최고를 추구했습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했죠." - 장만옥 (Oriental Daily, 2003)

"국영이는 연기할 때 프로페셔널했지만, 카메라 밖에선 외로워 보였어요." - 장첸 (Sing Tao Daily, 2003)

 

홍콩 연예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장국영은 1990년대 후반부터 우울증으로 고통받았다고 한다. 특히 그의 성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스캔들은 그를 더욱 지치게 했다. 1998년 그가 TVB 인터뷰에서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때로는 모든 것이 너무 무거워요. 하지만 배우는 늘 웃어야 하죠."

 

출처 : 연합 뉴스 ❘ yna.co.kr/view/PYH20230401058500074

 

장국영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아시아 전역에 큰 충격을 주었다. 4월 3일 그의 장례식에는 3만 명이 넘는 팬들이 참석했다. 매년 4월 1일이 되면 전 세계 팬들은 그를 추모하는 행사를 개최한다.

2004년 홍콩영화평론가협회는 "장국영은 단순한 배우가 아닌 한 시대의 아이콘이었다"고 평가했다. 그의 연기 스타일과 작품 선택은 후배 배우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아시아 LGBT 커뮤니티에서는 그를 선구자적 존재로 기억하고 있다.

2023년 현재까지도 장국영의 영향력은 계속되고 있다. BBC는 "장국영은 홍콩 영화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가장 빛나는 스타였다"고 평했다. 그의 작품들은 여전히 많은 영화학도들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으며, 그가 보여준 과감한 도전정신과 예술적 열정은 새로운 세대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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