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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배우

주윤발 : 따거(大哥, 큰형님)가 인격이 되어버린 남자.

by 블로잉 더스트 2025.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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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이란 허상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일상의 작은 순간들 속에 있습니다. 아내와 함께 하는 산책, 이웃들과 나누는 대화, 이런 것들이 제 인생을 풍요롭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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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윤발 | 2020년 홍콩 경제일보 인터뷰

 
 
라마 섬의 가난한 어부 가정에서 태어난 주윤발은 13세부터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가족의 생계를 도왔다. 호텔 벨보이, 우체부, 이발사 보조 등 다양한 일을 전전하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TVB 연기자 양성 과정에 지원하게 된다. 1973년, 당시 18세였던 그는 197: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이것이 세계적 배우 주윤발의 시작이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주윤발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홍콩 영화계를 대표하는 얼굴이자, 아시아를 넘어 할리우드까지 진출한 주윤발의 여정은 본인의 영화처럼 극적이다. 1981년 TVB 드라마 '상해탄'에서 허문걸 역을 맡아 스타덤에 오른 주윤발은, 1986년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으로 아시아 전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후 '첩혈쌍웅', '와호장룡' 등을 통해 장르를 넘나드는 연기력을 인정받았고, '용호문', '도성', '갓 오브 갬블러(도신)' 등 수많은 명작들로 홍콩 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990년대 후반에는 할리우드에 진출해 '리플레이서', '왕과 나' 등에 출연하며 글로벌 스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그러나 주윤발의 진정한 매력은 스타로서의 화려함이 아닌 인간적인 겸손함에 있다. 수많은 히트작의 주연 배우임에도 그는 여전히 홍콩의 서민 시장에서 식사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새벽 산책길에 만나는 팬들과 사진을 찍는 소탈한 모습으로 유명하다. "스타는 운이 좋아서 되는 것이지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선택"이라는 그의 말처럼, 주윤발은 배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잃지 않으려 노력해왔다.
 

영화 편당 출연료 70억인 주윤발 형님의 소탈한 모습

 
 


대표작으로 보는 주윤발의 필모그래피

 

영웅본색 (1986)

 
1990년 이전에 태어난 대한민국 남자들이라면 안 본 사람들이 없는 홍콩영화 최고의 명작 영웅본색이다. 오우삼 감독이 연출한 홍콩 느와르의 전설적인 작품으로, 주윤발, 적룡, 장국영이 주연을 맡았다. 사실 영웅본색 1에서는 적룡이나 장국영 간의 형제애에 촛점을 맞춘 스토리로 주윤발이 맡은 마크는 조연에 가깝다. 하지만 짧은 등장 장면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그의 존재감과 스타일 덕분에 영웅본색은 주윤발을 위한 영화라고 해도 부정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영웅본색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완전 연소 : 남김없이 태워버림'인데. 이 씬은 영화의 모든 것을 담아냈다.

 
송자호(적룡 분)와 마크(주윤발 분)는 홍콩에서 활동하는 범죄 조직원이다. 송자호는 동생 송자걸(장국영 분)이 경찰이 되는 것을 응원하며, 자신과는 다른 길을 걷기를 바란다. 하지만 범죄 조직의 배신으로 인해 송자호는 체포되고, 감옥에서 긴 세월을 보내게 된다. 그가 출소한 후, 세상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동생은 형의 과거를 수치스럽게 여기며 그를 멀리하고, 한때 범죄 조직에서 명성을 떨쳤던 마크 역시 다리를 다쳐 더 이상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마크는 친구인 송자호를 돕기 위해 다시 총을 들지만, 이미 조직 내에서 그의 입지는 사라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친구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마지막까지 동료를 위해 희생한다. 결국, 송자호와 마크는 조직과의 피할 수 없는 전쟁에 휘말리며 운명을 건 마지막 총격전을 벌이게 된다. 송자건 역시 형의 진정성을 이해하며 함께 싸우지만, 결국 피할 수 없는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마크가 불구덩이 속에서 두 형제를 구하고 있다.

 
이 영화를 최근에서야 접하는 사람들은 큰 감흥이 없겠지만, 이 영화가 상영할  80년대 당시 주윤발이 성냥개비를 입에 문 채 트렌치코트를 휘날리며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은 모든 청춘 남성들의 가슴에 꺼지지않는 불을 지폈다. ‘마크’는 이후 수많은 영화에서 오마주되었으며, 홍콩 액션 영화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특히 쿠엔틴 타란티노가 오우삼을 얼마나 존경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일화가 있는데,  한 할리우드 영화사 간부가 타란티노에게 "오우삼이 액션은 좀 찍지?" 하니 타란티노는 "예, 그리고 미켈란젤로는 천장에 그림을 그립니다."라고 했다는 얘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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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인간은 한 발자국만 나아가도 총알이 날아오지." (마크 | 주윤발)
"사람은 한 번 결정하면 후회하지 않는 거야."  (마크 | 주윤발)
 
[함께 출연한 배우]

장국영 : 찬란했던 아시아의 별

"모든 캐릭터에는 나의 일부가 있어요. 그리고 모든 캐릭터는 내 안에 영원히 살아있죠."-Hong Kong Film Archive 인터뷰, 1993년  1956년 9월 12일 홍콩에서 태어난 장국영은 '아시아의 슈퍼스타'라는 수

dust-in-real.tistory.com

 


첩혈쌍웅 (1989)

 
오우삼 감독과 주윤발이 다시 한 번 손을 잡고 탄생시킨 느와르 걸작으로, 강렬한 총격전과 감성적인 서사가 결합된 작품이다. 이 영화는 홍콩 느와르의 정점을 찍으며, 이후 수많은 액션 영화에 영향을 주었다. 주윤발은 냉혹하면서도 인간적인 킬러 아정 역을 맡아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선보인다.

 
아정(주윤발 분)은 실력과 명성을 자랑하는 킬러로 나온다.  그는 조직의 의뢰를 받아 한 건의 암살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가수 제니(엽천)를 총격전에 휘말리게 만든다. 그 사고로 제니는 눈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점점 시력을 잃어가지만, 아정은 자신의 실수로 인해 그녀의 인생을 망쳤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그녀를 몰래 지켜보게 된다. 죄책감을 넘어 사랑과 보호 본능이 싹튼 그는, 제니의 시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마지막으로 큰 암살을 결심한다.
 

주윤발의 실수로 제니는 시력을 잃게된다.

 
그러나 경찰 리 형사(이수현 분)는 아정을 추적하며 끈질기게 그를 쫓는다. 리 형사는 처음엔 아정을 단순한 범죄자로만 보았지만, 점차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하며 동정심을 느낀다. 하지만 법과 정의를 지켜야 하는 경찰로서, 그의 본분을 잊을 수는 없었다. 한편, 아정을 고용했던 조직은 그를 제거하기 위해 배신하고, 암살을 끝낸 후 돈을 받으러 간 아정은 덫에 걸려 위기에 처한다.
 
조직의 배신으로 인해 아정은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어진다. 리 형사는 점점 그와 협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고, 마침내 둘은 손을 잡고 거대한 조직과 맞서게 된다. 총격전 속에서 아정은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마지막 순간까지 제니를 지키려 한다. 그러나 끝내 그의 노력은 헛되었고, 제니는 완전히 시력을 잃는다. 영화는 사랑과 희생, 그리고 느와르 특유의 비극적인 결말로 마무리된다.

쫓고 쫓기는 관계였던 둘은 같은 편이 되어 싸운다.

 
주윤발은 이 영화에서 듀얼 건 액션을 정립하며 쌍권총을 활용한 전투 장면을 연기했다. 이 스타일은 이후 할리우드의 존 우 감독 영화와 매트릭스, 존 윅 시리즈 등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촬영 당시 오우삼 감독은 총격신을 더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잔뜩 과장된 슬로우모션과 폭발적인 연출을 활용했다.

오우삼의 연출과 주윤발의 스타일을 오마주한 매트릭스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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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는 길이 옳은 길일까? 하지만 다른 선택은 없어." (아정 | 주윤발)
"죄를 짓고도 용서받을 수 있을까? 만약 있다면, 난 그걸 원해." (아정 | 주윤발)
 
 


도신 (God of Gamblers, 1989)

한국에는 [정전자]라는 이름으로 출시됐었던 왕정 감독이 연출하고 주윤발, 유덕화, 왕조현이 출연한 도신은 홍콩 액션과 도박 영화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주윤발이 연기한 ‘고진’이라는 캐릭터는 이후 수많은 도박 영화의 원형이 되었으며, 영화는 홍콩 도박 액션 장르를 개척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능력 있는 도박사가 기억을 잃으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스타일리시한 액션과 유머러스한 요소로 그려냈다.
 

기억을 잃기 전 최고의 도박사였던 주윤발

 
도박계의 전설적인 인물인 고진(주윤발 분)은  뛰어난 기억력과 빠른 계산 능력을 바탕으로 한 번도 패한 적 없는 최고의 도박사다.  그러나 도박계의 또 다른 강자 첸(임달화 분)은 고진을 제거하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이 때문에 고진은 사고를 당해 머리를 크게 다치고, 기억을 잃게 된다. 우연히 떠돌이 소매치기 소년 나이차(유덕화 분)와 그의 친구들에 의해 구조된 고진은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정신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는 자신의 도박 실력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여전히 본능적으로 카드와 주사위를 다루는 능력을 지닌 채 기이한 도박 실력을 보인다.

적들의 계략에 머리를 다쳐,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주윤발

 
결국, 중요한 도박 대결에서 고진은 기억을 되찾게 되고, 천재적인 도박 실력을 다시 발휘하며 적들을 차례로 무너뜨린다. 마지막으로 그는 도박의 세계를 떠나겠다고 선언하며, 자신을 돌봐준 나이차에게 감사를 표하고 떠난다. 영화는 주윤발의 세련된 카리스마와 도박이라는 소재를 활용한 긴장감 넘치는 연출로 마무리된다.
 

당이 떨어지면 도박 능력이 저하되어, 수시로 초콜렛을 먹어야 한다.

 
주윤발은 고진 역할을 위해 도박 기술을 실제로 익히고, 전문가들에게 포커와 마작 기술을 배웠다. 또한, 영화 속에서 선보인 ‘초콜릿 먹으며 카드 맞추기’ 장면은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장면이었으며, 이후 홍콩 도박 영화에서 클리셰로 자리 잡았다.
 
 
"도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운이 아니라, 상대를 읽는 눈이다."
"승패는 숫자가 아니라, 상대방의 심리에 달려 있다."
 
 


 
 

큰 형님, 주윤발

그의 겸손과 인간미는 할리우드 진출 후에도 변함없었다. 2018년, 그의 전 재산 8100억 원을 기부하겠다고 선언해 화제가 되었다. "돈은 잠시 빌린 것일 뿐"이라는 그의 말처럼, 수십 년간 검소한 생활을 이어가며 자선 활동을 펼쳐왔다.
 
홍콩의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는 모습이 포착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수십억의 출연료를 받는 배우임에도 3달러짜리 버스를 타고, 길거리 음식점에서 서민들과 어울리는 그의 소탈한 모습은 그야말로 따거(大哥, 큰형님)이다.

 
2023년 기준 68세의 주윤발은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출연을 준비 중이며, 홍콩의 신인 감독들과의 작업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아내 재스민 탄과 함께하는 등산이 일상의 큰 즐거움이라고 밝힌 그는, 매일 아침 홍콩의 산책로를 걸으며 팬들과 사진을 찍고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배우로서의 성공보다 중요한 것은 한 사람으로서의 품격"이라는 그의 말처럼, 주윤발은 여전히 겸손과 열정으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이러한 모습은 단순한 배우를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으로서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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